폐암 4기인데 저는 걸어서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치료를 받으며 달라진 나의 하루
폐암 4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제가 머릿속으로 떠올린 암환자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병원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있는 모습.
혼자 걷기 힘든 모습.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모습.
저는 막연하게 4기 암환자는 그런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폐암 4기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제 몸은 제가 상상했던 모습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저는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도 갈 수 있었습니다.
진단 당시 심한 기침이나 가래, 숨이 차서 움직이기 어려운 증상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기 전 제가 느꼈던 것은 깊게 숨을 들이마실 때 왼쪽 갈비뼈 아래가 조금 불편한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이상했습니다.
‘내가 정말 폐암 4기 환자가 맞는 건가?’
그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검사는 제가 몸으로 느끼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흉수에서 암세포가 확인됐다는 설명을 들었고, PET-CT에서는 다른 부위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습니다. 조직검사 결과는 비소세포폐암 선암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느끼는 몸 상태와 검사에서 확인된 질환의 상태는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번 글은 **“폐암 4기여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저처럼 생활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폐암 4기가 가벼운 질환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겉으로 괜찮아 보이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질환의 상태는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제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1. ‘4기’라는 말을 들었는데 제 몸은 제가 생각했던 암환자의 모습과 달랐습니다
제가 처음 병원을 찾게 된 과정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2024년 11월 미국에서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약 열흘 동안 몸살과 심한 기침을 겪었습니다.
12월부터 깊게 숨을 들이마실 때 왼쪽 갈비뼈 아래가 약간 불편했습니다.
2025년 1월 미국에서 내과를 찾아갔지만 그 병원에는 혈액검사나 X-ray 시설이 없었습니다.
당시 의사는 갈비뼈 쪽의 미세한 문제 가능성을 생각했고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저는 3월 한국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H내과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 폐에 물이 찬 것처럼 보인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핵 같은 다른 원인도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병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한 뒤 큰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뒤 입원과 검사가 이어졌습니다.
흉관을 넣었고 첫날 약 1,200mL의 흉수가 빠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흉수에서 암세포가 확인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병원을 옮겨 PET-CT와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폐암 4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걸었습니다.
진단 당시에는 이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 머릿속에서는 ‘4기’와 ‘일상생활’이 서로 함께 있을 수 없는 단어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병이 심하면 반드시 몸으로 심한 증상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제가 느끼는 증상만으로 질환의 상태를 판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사실이 처음에는 안도감을 주기보다 오히려 혼란을 주었습니다.
몸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검사 결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퇴원하고 나니 암환자가 된 저에게도 아침이 오고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암 진단을 받으면 그날부터 모든 생활이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입원했다가 퇴원하면 다시 아침이 왔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병원 일정이 있으면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가 없는 날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족과 전화했습니다.
몸 상태가 괜찮으면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가족이 있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치료를 계속하기로 했고 형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병원이 비교적 가까워 버스를 이용해 다닐 수도 있었습니다.
특별한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 아니라면 혼자 병원에 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조차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폐암 4기 환자인데 혼자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고 있네.’
암환자가 된 순간부터 모든 것을 누군가가 대신해줘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제 생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진단 전과 똑같았던 것도 아닙니다.
가장 큰 차이는 병원이 제 생활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병원에 가는 날이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치료를 시작한 뒤에는 검사와 진료가 일정표의 일부가 됐습니다.
처음 타그리소를 복용한 뒤 약 5개월 동안은 매달 병원을 찾았습니다.
혈액검사를 했습니다.
흉부 X-ray도 찍었습니다.
필요한 검사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나중에는 진료 간격이 길어졌고 현재는 정기적으로 CT와 혈액검사, X-ray 등을 받으며 의료진과 상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는 날에는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제게 ‘일상생활을 한다’는 말의 의미도 바뀌었습니다.
예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치료와 검사가 제 생활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 사이에 제가 살아가는 시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뜻이었습니다.
3. 입원 중 시작한 걷기는 ‘암을 치료하는 운동’이 아니라 제 하루의 일부가 됐습니다
입원해 있을 때 간호사 선생님들이 식사 후 걸어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몸 상태가 괜찮을 때 병원 밖으로 나가 걸었습니다.
퇴원한 뒤에도 그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아침과 저녁 식사 후 약 30~40분 정도 걸었습니다.
컨디션이 괜찮은 시기에는 한 번 걸을 때 약 3km 정도 걷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형도 함께 걸었습니다.
그러다 형이 허리가 좋지 않아 같이 걷기 어려워진 뒤에는 혼자 걸었습니다.
제가 걷기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구분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걷기를 폐암 치료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걷기 때문에 암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걸었던 시간이나 거리가 다른 폐암 환자에게 적절한 운동량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특히 저는 이후 뼈 전이에 대한 방사선치료도 받았습니다.
환자마다 전이 위치와 뼈 상태, 치료 내용, 신체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제가 걸었던 거리와 시간을 그대로 권할 수 없습니다.
제게 걷기의 의미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병원에만 있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밖으로 나가 걸으면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차가 지나갔습니다.
바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걷는 동안에는 일부러 암 생각을 줄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나 드라마를 보면서 걷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걸으면서 화면을 보는 것은 주변 상황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제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걷는 시간만큼은 검사 결과와 암 생각에서 조금 떨어지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치료 중에도 일상을 느끼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암을 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암이 없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루 24시간 전체를 폐암 생각만 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4. 겉으로 괜찮아 보여도 제 머릿속까지 괜찮았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밥을 먹고 걸을 수 있었으니 마음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는 달랐습니다.
처음 유전자검사를 했을 때 치료에 바로 연결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후 추가 검사를 결정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데 약 2주가 걸렸습니다.
그 시간 동안에도 저는 밥을 먹었습니다.
밖에 나갔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생각했습니다.
‘변이가 발견될까.’
‘결과가 나오면 어떤 치료를 받게 될까.’
PET-CT를 받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겉으로는 걸어서 검사실에 들어갔지만 머릿속에서는 다른 곳에 암이 더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습니다.
검사 날짜가 가까워질 때도 그랬습니다.
병원까지 혼자 갈 수 있다는 것과 검사 결과가 두렵지 않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폐암 4기라는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겉으로만 보면 제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하고 나니 알게 됐습니다.
보이는 몸 상태와 보이지 않는 걱정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걸을 수 있으면서도 검사 결과가 무서울 수 있습니다.
밥을 잘 먹으면서도 다음 PET-CT가 걱정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웃으면서도 치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암환자를 겉모습만 보고 상태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 역시 제 몸만 보고 처음에는 제 병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5.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말은 ‘폐암 4기가 가볍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구분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저는 폐암 4기 진단 후에도 상당 기간 일상생활을 했습니다.
걸었습니다.
식사했습니다.
혼자 병원에 갔습니다.
가족과 영상통화를 했습니다.
직접 필요한 일을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근거로 **“폐암 4기도 별것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생활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암의 의학적인 상태는 다른 문제입니다.
국가암정보센터의 현재 자료에서도 폐암 치료는 병기뿐 아니라 환자의 전신상태와 치료 적응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폐암이라고 해도 모든 환자가 같은 상태가 아닙니다.
저는 비소세포폐암 선암이었고 유전자검사에서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습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의료진과 상담해 표적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환자는 조직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유전자검사 결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전이 부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치료방법도 다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신체 상태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를 읽는 다른 폐암 환자가,
‘저 사람은 4기인데 걸었는데 나는 왜 못 걷지?’
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반대로,
‘나는 저 사람처럼 잘 걸으니 내 암도 심하지 않은 것 아닐까?’
라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모두 제가 이 글에서 전달하려는 내용과 다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상태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제가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제 경험뿐입니다.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었지만 당시에는 걸을 수 있었고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실 때문에 처음에는 오히려 진단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검사와 치료를 반복하면서 내가 몸으로 느끼는 것만으로 암의 상태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이 제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부분입니다.
평범하게 보이는 하루 안에 치료가 함께 들어왔습니다
폐암 진단 전 제 하루는 아주 평범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밥을 먹었습니다.
일을 했습니다.
가족과 이야기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잠을 잤습니다.
그때는 그런 하루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직후에는 그 평범한 생활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는 병원과 치료만 남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는 조금 달랐습니다.
치료가 제 일상에 들어왔습니다.
약을 복용했습니다.
검사 날짜를 확인했습니다.
병원에 갔습니다.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필요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밥을 먹었습니다.
걸었습니다.
가족과 영상통화를 했습니다.
유튜브를 봤습니다.
드라마도 봤습니다.
잠을 잤고 다음 날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생각하는 일상은 예전과 완전히 똑같은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폐암이라는 현실과 치료가 존재하는 상태에서도 제 하루를 살아가는 것.
저에게는 그것도 일상이었습니다.
현재 국가암정보센터 자료에서도 폐암은 병의 특성과 환자의 상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개별 상황에 맞는 치료가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다른 환자의 생활 모습이나 치료 결과를 자신의 상태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저 역시 다른 환자에게 제 생활방식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당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병원에 갈 수 있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것이 제 경험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저는 폐암 4기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진단 초기에는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4기인데 어떻게 이렇게 걸어 다닐 수 있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병의 상태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평범하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해서 치료와 검사를 가볍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암환자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제 하루 전체를 암으로 채우고 싶지도 않습니다.
검사받는 날에는 검사를 받습니다.
진료받는 날에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약은 정해진 대로 복용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제 생활을 합니다.
처음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제 평범한 생활이 그날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로 경험한 것은 일상의 끝이 아니라 일상의 변화였습니다.
병원과 검사와 치료가 들어온 새로운 하루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성자 정보
이 글은 폐암 진단 후 실제 치료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진단과 검사, 치료 과정에서 직접 겪고 느낀 내용을 기록하며,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의료정보 안내
이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료진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암의 상태와 검사 방법, 치료 과정, 약물 복용 및 생활관리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개인의 진료와 치료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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