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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정보만세 - 폐암 4기 환자의 치료 기록 MY정보만세 – 폐암 4기 환자의 치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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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4기 진단 땐 울지 못했는데, 유전자검사 결과를 듣고 처음 눈물이 난 이유

읽는 시간 약 13분 조회 28

폐암 4기 진단 땐 울지 못했는데, 유전자검사 결과를 듣고 처음 눈물이 난 이유

폐암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에게 설명을 듣다가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몇 기인가요?” 4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숫자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PET-CT 결과를 설명받으면서 폐 이외의 다른 부위에도 암으로 의심되는 병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강해서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많은 일이 짧은 시간 안에 이어졌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시간을 갖기보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따라가는 데 정신이 없었던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추가 유전자검사를 받고 약 2주 뒤 결과를 들으러 갔던 날, 저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웃고 있었고, 제 검사에서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암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완치됐다는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았던 것처럼 눈물이 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 왜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그날 처음 나왔을까.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폐암 4기라는 말을 듣고도 담담했던 시기에 제가 했던 일들
  •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폐암을 알린 과정과 가족의 반응
  • 진단 직후 감정을 다루기 위해 만든 생활 루틴
  • 유전자검사 결과를 듣고 눈물이 났던 이유에 대한 지금의 생각

이 글은 EGFR이나 유전자검사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그 질문에 대한 제 기억과 감정을 기록한 개인적인 글입니다. 검사 과정과 결과를 들은 장면은 앞선 글에, EGFR과 Exon 19의 뜻은 또 다른 글에 정리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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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4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습니다

처음 암이라는 말을 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제 반응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D병원에서 흉수를 배액하고 검사를 받으면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고, 흉수에서 암세포가 확인됐다는 설명까지 들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Y병원으로 옮겨 PET-CT와 조직검사를 받았고, 형님과 형수님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의료진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병기였기 때문에 먼저 물었습니다. “몇 기인가요?” 그 숫자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어디까지 퍼진 것인지, 치료는 가능한 것인지,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는지 같은 질문들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진료실에서 나온 뒤에는 인터넷을 검색했고, 폐암 4기 생존기간과 생존율을 찾아봤습니다. 검색 결과에서 좋지 않은 숫자를 접할수록 마음은 무거워졌습니다. 지금은 그런 통계 하나를 제 남은 시간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진단 직후의 저는 같은 폐암 4기라는 말만 들어가 있으면 그 숫자가 곧 제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은 그날은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날입니다. 수만 가지 생각을 했고,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하루였으며, 바쁘게 인터넷을 뒤진 날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알리면서 오히려 제가 괜찮은 척했습니다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저는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도 상황을 알려야 했습니다. D병원에 입원해 폐암이라는 말을 들은 날 아내에게 가장 먼저 전화했습니다. 딸은 출장 중이어서 아내가 기다렸다가 집에 온 날 알렸고, 아들은 대학생이라 집으로 오라고 해서 알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족은 2주 만에 모두 한국에 들어와 약 3일 동안 저와 함께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딸은 생활비를 보태기로 했고, 아들은 휴학하고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아내가 만류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을 비교적 잘 견뎠지만, 오히려 미국의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가족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괜찮은 척하며 치료 방법이 있을 것이고 좋은 약도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들은 매일 화상통화로 제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했고, 때로는 부담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이 가족을 안심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지금도 즐겁게 통화하려고 합니다.

병원에는 중요한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 아니면 대부분 혼자 다녔습니다. 형님과 형수님이 가까이 계셨고 병원까지 거리도 부담이 없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 시기의 저는 슬픔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슬퍼할 틈보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는 일이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진단 이후 제가 들었던 말들은 대부분 더 나쁜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던 시기를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폐에 물이 찬 것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었고, 이후에는 흉수에서 암세포가 확인됐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병원을 옮긴 뒤에는 폐암이 진행된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PET-CT 결과에서는 폐 이외의 다른 부위에 대한 설명까지 이어졌습니다. 조직을 확보하기 위해 수술을 받은 뒤에는 비소세포폐암 선암이라는 병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나를 확인하면 상황이 조금 명확해지기는 했지만, 그 명확해진 내용은 대부분 제가 듣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암일까’를 확인했고, 그다음에는 ‘어떤 암인가’를, 다시 ‘얼마나 진행됐는가’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검사를 받을수록 궁금증은 줄어드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속 부담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병원에 가면 계속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시행한 유전자검사에서 치료와 바로 연결해 검토할 수 있는 변이를 찾지 못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또 하나의 막다른 곳을 만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시기에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걷기와 숙면이었습니다. 피로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운동이 부족해서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으로 3킬로미터 정도씩 걸었고,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했으며, 아침 7시 전에 일어나 아침을 먹는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불안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만든 방식일 뿐 모든 환자에게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활동량이나 생활 습관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므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무엇이 더 나쁠까’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기다렸습니다

추가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제가 기억하기로 약 2주 정도 걸렸습니다.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그 결과를 기다리면서 제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는 암이 맞는지, 어떤 종류의 암인지가 궁금했고, PET-CT를 받을 때는 제 몸 어디까지 문제가 있는지가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추가 유전자검사의 결과를 기다릴 때는 질문의 방향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치료를 할 수 있을까?”

그전까지 받은 검사들이 제 몸에서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면, 이번 검사는 처음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찾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미 첫 검사에서 치료와 바로 연결할 변이를 찾지 못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기대를 크게 했다가 다시 실망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기대하지 않으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저는 처음으로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웃고 있는 것을 보고 결과를 듣기 전부터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결과를 확인하러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담당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밝았습니다. 웃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표정을 정확하게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의 저는 결과를 듣기 전부터 마음이 조금 놓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이름 자체를 제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치료 방향을 논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이해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눈물은 단순히 기뻐서 나온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은 뒤 짧은 시간 동안 계속 긴장한 채 다음 검사와 다음 결과를 따라가고 있었고, 마음 한쪽에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이 계속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그 긴장이 조금 풀린 것 같습니다. 암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은 것은 아니었고, 폐암 4기라는 현실도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이제 다음에 무엇을 할지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운 것은 치료 성공을 확인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날의 경험을 기록하면서 가장 조심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다는 말을 듣고 정말 기뻤고 큰 안도감을 느꼈지만,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다는 것과 치료 성공을 확인했다는 것은 전혀 같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날은 아직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하기 전이었고, 앞으로 치료가 제 몸에서 어떻게 진행될지, 얼마나 오랫동안 같은 치료를 이어갈 수 있을지, 어떤 부작용을 경험하게 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확인한 것은 미래의 치료 결과가 아니라 치료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정보 하나였습니다.

저는 제 과거 검사 결과지의 세부 분자 표기를 지금 확인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제 결과를 일반적인 의학자료에 나오는 ‘exon 19 deletion’이라고 임의로 바꾸어 기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담당 의료진에게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것과,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의료진과 치료 방향을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날 제가 울었던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었습니다. 완치를 확인해서 운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볼 수 있을지 처음으로 구체적인 방향이 보였기 때문에 울었습니다.

그날부터 제 관심은 ‘얼마나 남았을까’에서 ‘이제 무엇을 할까’로 조금씩 옮겨갔습니다

폐암 4기 진단 직후 제가 가장 많이 검색했던 것은 생존기간과 생존율이었습니다.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고, 인터넷에서 숫자를 하나 발견하면 제 남은 시간을 본 것처럼 받아들였으며, 더 나은 숫자를 찾기 위해 또 다른 자료를 검색했습니다. 하지만 유전자검사 결과를 듣고 담당 의료진과 실제 치료 방향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제 관심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폐암 4기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 치료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도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계속 ‘얼마나 남았을까’만 생각했다면, 그날 이후에는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도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는 그 변화가 컸습니다.

이 글은 치료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서 멈추려고 합니다. 첫 약을 받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처음 약값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치료를 시작한 뒤 몸에서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지는 그 자체로 별도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폐암 진단 이후 저는 계속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지나고 있었고, 슬퍼할 시간도 없이 다음 검사와 다음 진료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의 눈물을 단순히 기쁨의 눈물이라고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폐암 4기 진단 이후 계속 쌓여 있던 두려움과 긴장이 조금 풀렸고, 동시에 처음으로 구체적인 치료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이 함께 섞여 있던 눈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폐암 4기라는 말을 듣고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앞으로 무엇을 해볼 수 있는지 처음으로 알게 된 날 나왔습니다.

참고자료

국가암정보센터: https://www.cancer.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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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폐암 진단 후 실제 치료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진단과 검사, 치료 과정에서 직접 겪고 느낀 내용을 기록하며,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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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료진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암의 상태와 검사 방법, 치료 과정, 약물 복용 및 생활관리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개인의 진료와 치료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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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4기 진단 후 현재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환자로, 제가 실제로 경험한 진단·검사·치료 과정과 그 과정에서 확인한 정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료인이 아니며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내용은 담당 의료진과 공식 의료기관의 정보를 우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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