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4기라는 말에도 울지 않았던 제가, EGFR 변이를 찾았다는 말에 처음 울었습니다

폐암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형님과 형수님이 옆에 있었고 의사 선생님에게 제가 가장 먼저 물었던 말은 **“몇 기인가요?”**였습니다.
4기라는 대답을 들은 뒤에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사 선생님이 진료실을 나간 뒤 휴대전화를 들고 폐암 4기 생존기간과 생존율을 검색했습니다.
무서운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습니다.
그런 제가 며칠 뒤 유전자 검사 결과를 들으면서 처음 울었습니다.
폐암 4기라는 말 때문이 아니라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의 진료실과 담당의 선생님의 표정이 기억납니다.
폐암 확진보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유전자 변이’라는 말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제 진단 과정은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X-ray에서 폐에 물이 차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고 상급병원에서 흉수를 빼고 검사를 받았습니다. 흉수에서 암세포가 확인됐다는 설명을 들은 뒤 다른 병원으로 옮겨 PET-CT와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흉강경 수술로 조직을 확보했고 입원 4일째쯤 조직검사 결과를 들었습니다.
비소세포폐암 선암이었습니다.
그때 담당의 선생님은 조직을 이용한 유전자 검사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유전자 검사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폐암이면 폐암이지, 유전자 검사가 왜 필요하지?’
아마 그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퇴원 후 다시 외래진료를 갔을 때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에서는 표적치료로 연결될 만한 변이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인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냥 다음 치료를 받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담당의 선생님이 설명해주셨습니다.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면 그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를 선택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에 변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현재 국가암정보센터에서도 폐암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항암제 효과를 예측하고 환자의 암 특성에 맞는 약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EGFR 돌연변이가 있는 비소세포폐암에는 EGFR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가 사용됩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이런 내용을 지금처럼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환자 입장에서 제가 이해한 것은 훨씬 간단했습니다.
“찾을 수 있다면 한 번 더 찾아보자.”
그 마음이었습니다.
약 800만 원의 추가 혈액검사, 그래도 해보기로 했습니다
담당의 선생님은 추가로 해볼 수 있는 검사에 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제 피를 뽑아 미국으로 보내 더 폭넓게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는 Guardant360 검사였습니다.
당시 제가 들었던 설명으로는 병원에서 먼저 시행했던 검사보다 훨씬 많은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약 74개의 주요 암 관련 유전자를 검사한다고 들었습니다.
검사비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 건강보험이 없는 상태였고 검사비는 약 80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미 입원비와 수술비, 검사비로 적지 않은 돈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검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돈이 아깝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혹시 제 암에서 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가 있는데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면, 비용 때문에 그 가능성을 확인하지 않고 지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날 비용을 결제하고 병원 채혈실에서 피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2주를 기다렸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당시 들었던 검사 범위와 비용은 제가 치료받던 시점의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입니다. Guardant360을 포함한 유전자 검사의 종류와 검사 범위, 비용, 보험 적용 여부는 시기와 환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폐암 환자가 제가 받은 것과 같은 추가 검사를 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지금 이 글에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검사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검사를 선택했던 당시 제 마음입니다.
저에게 그 2주는 단순히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게 될지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기다렸던 시간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알려준 결과, EGFR Exon 19
약 2주 뒤 다시 외래진료를 갔습니다.
그날 담당의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선생님이 웃으면서 변이 DNA를 찾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검사에서 확인된 것은 EGFR Exon 19 변이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표적치료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전과 전혀 다른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폐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4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PET-CT에서 다른 부위와 뼈에도 전이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도 어떻게 치료할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치료할 수 있는 표적을 찾았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아마 그동안 눌러놓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표적치료에 관한 내용을 찾아본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EGFR 변이가 발견됐다는 말이 저에게는 단순한 검사 결과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맞춰 시도해볼 수 있는 치료가 생겼다.”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국가암정보센터는 표적치료제를 암 발생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 등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로 설명하고 있으며, EGFR 돌연변이가 있는 비소세포폐암에서 오시머티닙을 포함한 EGFR 표적치료제가 사용되고 있음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물론 EGFR 변이가 발견됐다고 해서 모든 환자에게 같은 치료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약제 선택과 치료 반응, 부작용, 이후 치료 과정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에게 그런 복잡한 설명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희망이었습니다.
그날 타그리소 80mg을 처방받았습니다.
당시는 한국 건강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30일분 약값이 약 75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상자를 손에 들었는데 정말 금덩어리를 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가격이 비싸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작은 상자 안에 제가 그렇게 기다렸던 치료의 가능성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상자를 열고 물과 함께 첫 알을 바로 먹었습니다.
한 알 가격을 계산해보니 대략 25만 원 정도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정이 벅차서 제대로 말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폐암을 진단받고 처음 흘린 눈물은 슬퍼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던 저는 상당히 무덤덤했습니다.
어쩌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일 시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검사하고, 입원하고, 흉수를 빼고, 병원을 옮기고, PET-CT를 받고, 조직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너무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슬퍼할 시간보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폐암이라는 말을 듣고도 울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EGFR Exon 19 변이가 발견됐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는 달랐습니다.
그날 제가 흘렸던 눈물은 절망해서 나온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치료를 계속해볼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나온 눈물이었습니다.
이후 타그리소를 복용하면서 피부가 갈라지고 벗겨지는 증상과 설사 같은 불편함도 경험했습니다. 매달 피검사와 X-ray를 받았고, 흉수가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이후에는 뼈 전이 부위에 방사선치료도 받았습니다.
치료가 언제나 편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도 치료와 정기검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EGFR 변이가 발견된 일을 **“암을 이겼다”거나 “완치의 시작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폐암 4기라는 말을 듣고 인터넷에서 생존기간을 검색하던 사람이 약 2주 뒤에는 자신의 암에서 발견된 유전자 이름을 기억하게 됐습니다.
EGFR Exon 19.
예전의 저라면 평생 들어볼 일도 없었을 단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단어를 들었던 날의 담당의 선생님 표정과 제가 흘렸던 눈물까지 기억합니다.
암 환자가 된 뒤 저는 검사 결과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크게 움직일 수 있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쉬워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다시 다음 치료를 생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검사해보기를 잘했다고.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직접 겪은 한 환자의 경험입니다. 어떤 유전자 검사가 필요한지, 어떤 표적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지는 암의 종류와 검사 결과, 환자의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처럼 인터넷에서 답을 먼저 찾기보다는 검사 결과의 의미와 치료 선택은 담당 의료진에게 충분히 설명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EGFR Exon 19라는 결과는 단순한 검사 결과지가 아니었습니다.
폐암 4기라는 말을 듣고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을 처음 흘리게 만든, 다시 치료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결과였습니다.
작성자 정보
이 글은 폐암 진단 후 실제 치료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진단과 검사, 치료 과정에서 직접 겪고 느낀 내용을 기록하며,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의료정보 안내
이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료진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암의 상태와 검사 방법, 치료 과정, 약물 복용 및 생활관리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개인의 진료와 치료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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