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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4기 환자로 치료받으며 직접 겪은 진단과 치료 과정, 그리고 다시 일상을 찾아가는 경험을 기록합니다.

폐암 4기라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늦게 알렸습니다, 그 뒤 제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읽는 시간 약 19분
ChatGPT Image Sep 17 2026 09 01 56 PM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뒤 저는 모든 사람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가족에게는 알려야 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형님도 제 진단과 치료과정을 알고 있었고 미국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와 지인들에게는 달랐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약 30년을 생활했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도 있었고,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도 있었고, 미국 생활을 하며 관계를 이어온 지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폐암 4기라는 사실을 바로 알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누가 알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저 자신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폐암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4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PET-CT를 받았습니다.

유전자검사를 기다렸습니다.

치료방법도 처음부터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한국의 가까운 몇 사람 외에는 한동안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유전자검사에서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고 의료진과 상담한 뒤 표적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치료를 이어가면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PET-CT를 비롯한 검사 결과를 설명받으면서 제 상태가 처음보다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제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말해야겠다.”

그런데 제가 폐암 사실을 알린 뒤 일어난 일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걱정하는 연락 정도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말로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치료비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 친구와 지인들이 돈까지 보내주었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헛살지는 않았구나.”

이번 글은 암환자가 친구에게 자신의 병을 알려야 하는지, 언제 알려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글이 아닙니다.

저는 그 답을 모릅니다.

사람마다 관계가 다르고 자신의 병을 공개하고 싶은 범위도 다를 것입니다.

이 글은 폐암 환자가 된 제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에게 뒤늦게 병을 알렸고, 그 일을 계기로 제가 살아온 인간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된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1. 폐암 4기라는 말을 듣고도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폐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생각했던 사람들은 가족이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결국 딸과 아들도 제 소식을 알게 됐고 가족은 약 2주 뒤 한국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에게

“나 폐암이래.” 라고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어느 정도인지,

어떤 치료를 받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한국에서 계속 치료할 것인지,

미국으로 돌아올 것인지.

그런데 당시의 저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저부터 궁금했습니다.

폐암 4기라는 말을 듣고 의사 선생님이 진료실에서 나간 뒤 인터넷에서 생존기간과 생존율부터 검색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아는 것이 없으니 검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미국 친구들에게 연락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사람들의 걱정을 먼저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암에 걸렸다고 말하면 상대방도 걱정하게 됩니다.

괜찮냐고 물어볼 것입니다.

힘내라고 할 것입니다.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평소라면 고마운 말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저는 그런 말을 받아들일 준비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이 폐암 4기라는 사실을 아직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사람 몇 명만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저를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은 제가 한국에 있다는 것은 알아도 제가 폐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습니다.

저에게는 그 상태가 한동안 더 편했습니다.


2. 치료가 시작되고 나서도 바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추가 유전자검사를 통해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습니다.

그 결과를 들었던 날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울지 않았던 제가 그날은 눈물이 났습니다.

표적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고 타그리소 80mg을 처방받았습니다.

저에게는 큰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곧바로 친구들에게 연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치료가 시작됐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약을 먹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제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처음 몇 주 동안에는 손가락과 발가락 주변 피부가 갈라지고 벗겨지는 증상을 경험했습니다.

설사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치료를 이어갔습니다.

초기 몇 달 동안에는 매달 병원에 갔습니다.

혈액검사를 했고 X-ray도 찍었습니다.

제가 영상을 보면서 느끼기에도 흉수가 조금씩 줄어드는 변화가 보였습니다.

의료진에게도 치료가 작용하고 있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면서 저도 조금씩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다음 검사에서 무엇이 나올지 두려운 마음이 훨씬 컸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이어가고 검사를 반복하면서 오늘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생활이 만들어졌습니다.

약을 먹고, 병원에 가고, 검사를 받고, 식사를 하고, 걷고, 잠을 자는 생활이었습니다.

암이라는 사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처음처럼 하루 종일 ‘폐암 4기’라는 말 하나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게 됐습니다.

그래도 아직 친구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먼저 제 상황을 조금 더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3. PET-CT 결과를 확인한 뒤에야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치료를 시작한 뒤 몇 달이 지나 PET-CT를 다시 받았습니다.

PET-CT는 저에게 특히 긴장되는 검사였습니다.

처음 PET-CT를 받았을 때는 암이 어디까지 퍼져 있을지가 무서웠습니다.

이후 다시 검사를 받을 때는 치료 후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가 궁금했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영상에서 보았을 때 처음보다 암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고, 의료진에게도 상태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결과를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하필 그때였는지는 저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나쁜 결과를 숨기고 싶어서였던 것은 아닙니다.

친구들에게 좋은 결과만 보여주고 싶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되어서야 제가 제 이야기를 끝까지 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다음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저도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조금 달랐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았고, 조직검사를 받았고, 유전자검사를 했고, EGFR 변이가 확인됐고, 표적치료를 시작했고,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았고, 최근 검사에서는 처음보다 좋은 변화를 확인했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제가 치료를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응원해달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4. 걱정하는 연락만 올 줄 알았는데 돈을 보내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친구들에게 폐암 사실을 알리면서 제가 예상했던 반응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많이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괜찮냐고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힘내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연락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제 치료비 상황을 알게 된 일부 친구와 지인들이 돈을 보내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치료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을 사용한 상태였습니다.

한국 건강보험이 없던 초기에는 병원비를 비급여로 부담했고, 추가 유전자검사 비용도 있었습니다.

표적치료를 시작한 초기에도 약값을 비급여로 부담했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이후 건강보험과 산정특례를 적용받게 되면서 부담이 크게 줄었지만, 그전까지 사용한 비용은 이미 상당했습니다.

이 구체적인 비용과 보험 과정은 다른 글에서 이미 자세히 기록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다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 그 상황을 알고 실제로 도움을 줬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먼저 도와주었습니다.

그 순간 돈의 액수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내가 헛살지는 않았구나.”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일 때문에 만난 사람도 있었고, 오랫동안 친구로 지낸 사람도 있었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고 사람 때문에 힘든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런 관계를 하나하나 평가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그냥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을 보면서 제가 살아온 시간이 다시 보였습니다.

돈을 보내준 사람만 고마웠다는 뜻은 아닙니다.

연락을 해준 사람도, 기도하겠다고 말해준 사람도, 건강해져서 다시 보자고 말해준 사람도 모두 고마웠습니다.

다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실제 도움까지 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암환자가 되고 나서 인간관계를 이런 방식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5. 친구들에게 알리고 나니 오히려 암 이야기를 덜 하게 되는 순간도 생겼습니다

처음 친구들에게 폐암 사실을 알렸을 때는 대화의 중심이 당연히 암이었습니다.

언제 알게 됐는지, 지금은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몸은 어떤지, 한국에는 얼마나 있을 것인지.

친구들은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친구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걷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영상통화도 하고, 블로그도 만들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예전처럼 농담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제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장난으로 “꾀병 아니냐?” 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제가 꾀병을 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처음 폐암 4기라고 이야기했을 때 친구들이 상상했던 모습과 지금 영상통화나 사진에서 보는 제 모습 사이에 차이가 있으니 하는 농담입니다.

저도 그런 농담을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 좋습니다.

친구가 저를 볼 때마다 “암환자니까 조심해야 해.” “많이 아프지?” 라고만 말한다면 저 역시 계속 환자로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전처럼 농담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오히려 편합니다.

저는 폐암 환자가 맞습니다.

현재도 치료를 받고 있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습니다.

겉으로 괜찮아 보인다고 치료가 끝난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암환자라는 사실이 제 인간관계의 전부가 될 필요도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다시 농담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작은 부분처럼 느껴집니다.


친구들의 반응을 보며 제가 살아온 시간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폐암 4기 진단을 받기 전에는 인간관계를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많지 않았습니다.

누가 진짜 친구인지 시험할 이유도 없었고, 누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지를 확인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암환자가 되고 나니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그 관계들이 제 앞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가족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딸은 생활비를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학교를 쉬고 일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친구들은 제 소식을 듣고 연락했습니다.

기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일부는 치료비에 보태라며 돈을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일을 하며 살아왔고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를 만나도 제가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폐암 환자가 된 뒤에는 제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불편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제가 건강했을 때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어려워졌을 때 그 사람들이 다시 제 곁에 와준 것일 수도 있다고.

그래서 “내가 헛살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인간관계를 잘했다는 자랑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반응이 돌아와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암환자에게 연락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연락하지 못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연락했는지, 누가 돈을 보냈는지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제가 힘든 시기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제 안부를 물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폐암 사실을 알린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 상황을 설명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치료가 진행되고 검사 결과에서 좋은 변화를 확인한 뒤에야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점이 저에게는 맞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암환자에게도 좋은 방법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진단받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가족 외에는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직장 때문에 공개 범위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느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암 진단은 매우 개인적인 정보이고 누구에게 언제 이야기할지는 각자가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습니다.

제가 먼저 제 병을 받아들이고, 치료가 시작되고,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제 이야기를 처음부터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게 된 뒤에야 친구들에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예상하지 못했던 응원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사람들과 다시 농담도 합니다.

폐암 4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날의 저는 이런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인터넷에서 생존기간을 검색하던 저는 앞으로 친구들과 다시 웃으며 농담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치료 중입니다.

앞으로 어떤 검사 결과가 나올지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미래를 낙관적으로 단정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현재 제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기록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폐암 사실을 늦게 알렸습니다.

친구들은 놀랐습니다.

걱정해주었습니다.

기도해주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경제적으로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다시 저에게 농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치료와는 다른 의미의 회복처럼 느껴집니다.

의학적인 회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다시 평범하게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생활이 돌아오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폐암 환자가 되고 나서 저는 건강할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걷는 것이 소중해졌고, 가족과 영상통화하는 시간이 달라졌고, 평범하게 식사하는 것도 중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의 연락 한 통도 이전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때는 암 이야기가 아니라 예전처럼 평범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어떻게 치료받았는지 설명하는 시간보다, 그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웃고, 여행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을 기다리며 지금은 제가 해야 할 치료와 검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걱정해준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때 연락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 말은 제가 폐암 환자가 되고 나서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감사의 표현입니다.

작성자 정보

저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한국에서 받은 건강검진을 계기로 폐 이상을 발견했고, 이후 여러 검사와 조직검사를 거쳐 폐암 4기 비소세포폐암 선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가족과 한국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진단 사실을 알렸지만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많은 친구와 지인들에게는 한동안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치료를 시작하고 이후 검사 결과를 확인한 뒤에야 폐암 사실을 알렸고, 예상하지 못했던 응원과 경제적인 도움까지 받았습니다. 이 글은 암 진단을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 알려야 하는지를 안내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제가 직접 겪은 인간관계와 감정의 변화를 기록한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의료정보 안내

이 글은 폐암 4기 진단 후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한 글입니다. 암 진단 사실을 가족, 친구, 직장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 어떤 범위까지 알릴지는 개인의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정해진 한 가지 방법이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에 언급된 검사와 치료 경험 역시 작성자의 개인적인 과정입니다. 폐암의 검사와 치료에 관한 결정은 개인별 검사 결과와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담당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암 정보만세
폐암 4기 진단 후 현재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환자로, 제가 실제로 경험한 진단·검사·치료 과정과 그 과정에서 확인한 정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료인이 아니며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내용은 담당 의료진과 공식 의료기관의 정보를 우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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