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미국에 있고 저는 한국에 남았습니다, 혼자 폐암 치료를 이어가며 만든 생활

한국에 남은 뒤
한국에서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은 뒤 저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치료를 이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정에 대해서는 앞의 글에서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치료받겠다고 결정하는 것과 실제로 한국에서 치료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제 아내와 아이들은 미국에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형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다행히 병원은 버스로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특별한 검사 결과를 듣거나 가족이 함께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병원에도 대부분 혼자 갔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있고, 집에 돌아오면 형의 가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치료가 길어지면서 알게 됐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암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병원에 혼자 가는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검사 결과를 혼자 듣는 날이 있었습니다.
진료실에서 들은 내용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다음 검사 날짜를 챙겨야 했습니다.
약도 제가 챙겨야 했습니다.
검사 결과를 미국의 가족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는 날에는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저녁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가족과 떨어져 한국에서 폐암 치료를 받고 있구나.’
이번 글은 혼자 암 치료를 받는 환자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체크리스트가 아닙니다.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완벽한 준비물이 아니었습니다.
치료를 계속하면서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제 생활방식을 하나씩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 ‘혼자 치료한다’고 했지만 사실 저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혼자 폐암 치료를 받았다고 표현할 때 한 가지는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완전히 혼자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형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병원도 형의 집에서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처음 치료가 시작됐을 때는 형이 걷기도 함께해 주었습니다.
가족은 미국에 있었지만 한국에도 형과 형수가 있었고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치료했다’는 말은 모든 것을 아무 도움 없이 해결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게 혼자라는 말은 조금 다른 의미였습니다.
평소 진료는 제가 혼자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도 혼자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도 제가 직접 듣고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나온 뒤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결과를 알려야 했습니다.
진단 초기에는 가족도 한국에 왔습니다.
제가 폐암이라는 사실을 전화로 알린 뒤 가족들이 한국으로 왔고 며칠 동안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생활은 미국에 있었습니다.
아들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딸도 자신의 생활이 있었습니다.
아내도 미국의 집과 생활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결국 가족들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저는 한국에 남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식사를 하고,
병원 일정이 있으면 혼자 병원에 가고,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평범했을 일들이 암환자가 된 뒤에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고 있었고 저는 암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면 저 역시 평범하게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낯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것이 제 새로운 일상이 됐습니다.
2. 검사 결과를 혼자 듣는 것보다 가족에게 설명하는 일이 더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병원에 혼자 다니면서 가장 긴장되는 날은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었습니다.
평소 진료라면 혼자 가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PET-CT나 CT 같은 중요한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듣는 날은 달랐습니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가 괜찮을까.’
‘다른 곳에 새로운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치료를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진료실을 나오면 또 다른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알려주는 일이었습니다.
가족은 제 검사 날짜를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내는 제 상태가 궁금했기 때문에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하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날에는 그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제가 괜찮다고 이야기해도 가족은 직접 제 얼굴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매일 얼굴까지 확인해야 하는지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됐습니다.
가족에게는 제가 화면에 나타나 평소처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안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검사 결과를 들은 날에는 제가 먼저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정리해 보려고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가족에게 전달하면 가족이 더 걱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결과를 들은 날에는 가족에게 빨리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반대로 걱정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한 번 더 생각했습니다.
가족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치료받을 때 연락은 단순히 검사 결과를 보고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평범한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듣고,
아내와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잠시 제가 폐암 환자가 아니라 원래의 남편이고 아버지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영상통화는 치료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제 일상을 유지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였습니다.
3. 병원에 가지 않는 날을 어떻게 보낼지가 생각보다 중요했습니다
처음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제 머릿속에 병원과 치료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치료가 가능한지,
유전자 변이가 있는지,
어떤 약을 사용하게 될지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치료가 시작되고 나니 병원에 가지 않는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제야 현실적인 문제가 보였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지?’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장을 봐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세탁도 해야 했습니다.
약을 챙겼습니다.
몸 상태가 괜찮으면 밖으로 나갔습니다.
입원 중 간호사 선생님들의 권유로 시작했던 걷기도 퇴원 후 계속했습니다.
아침과 저녁 식사 후 약 30~40분 정도 걷는 날이 많았습니다.
컨디션이 괜찮을 때는 한 번에 약 3km 정도 걷기도 했습니다.
이 시간과 거리는 어디까지나 당시 제 개인적인 생활 기록입니다.
다른 폐암 환자에게 같은 운동량이 적절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걷기가 암을 치료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저에게 걷는 시간은 오히려 암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는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혼자 걷다 보면 자꾸 검사와 치료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나 드라마를 보면서 걷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걸으면서 화면을 보는 방법은 안전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어떻게든 암 생각만 하면서 걷고 싶지 않았습니다.
식사도 비슷했습니다.
처음에는 암에 좋다는 음식을 많이 찾았습니다.
직접 나물 반찬을 만들어 먹어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고 스트레스가 됐습니다.
그러다 동네 반찬가게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나물 반찬을 사왔습니다.
단백질은 계란이나 닭가슴살, 생선 등을 먹었습니다.
특별한 ‘암 치료 음식’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혼자서도 식사를 거르지 않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은 것에 가까웠습니다.
치료를 오래 이어가면서 저는 이런 평범한 일들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는 날도 제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4. 병원 일정과 약을 챙기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제 생활의 일부가 됐습니다
혼자 병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도 있었습니다.
진료 날짜가 정해지면 휴대전화에 저장했습니다.
다음 검사가 무엇인지 확인했습니다.
검사 전에 특별히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기억하려고 했습니다.
궁금한 내용도 메모했습니다.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관리했던 것은 아닙니다.
필요해서 하나씩 하다 보니 생긴 습관이었습니다.
병원을 옮긴 경험도 있어서 검사자료와 진료기록의 중요성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검사한 기록이 어디서나 자동으로 모두 보이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의료기관이 달라지면 이전 검사자료를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제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도록 정리해 두려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검사 결과를 분석하거나 치료방향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의료진의 영역입니다.
제 목적은 훨씬 단순했습니다.
“지난번에 무슨 검사를 했지?”
“다음 진료가 언제지?”
“의사 선생님에게 무엇을 물어보려고 했지?”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타그리소 복용도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해졌습니다.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된 뒤 의료진과 상담해 타그리소 80mg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약을 받아 들었을 때는 그 한 알의 의미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매일 복용하다 보니 약 역시 제 생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현재 저는 개인적으로 밤 10시쯤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이 의학적으로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 정한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잊지 않고 챙기기 편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밤에 약을 먹으면 자는 동안에도 약이 암과 싸우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해지는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복용시간이나 방법은 처방과 의료진의 안내를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료가 시작된 초기에는 모든 것이 특별했습니다.
검사도 특별했습니다.
병원 가는 날도 특별했습니다.
약 한 알도 특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은 조금씩 제 일상에 들어왔습니다.
저에게 혼자 치료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변화이기도 했습니다.
5. 가장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치료를 받다 보면 한 가지 걱정이 생깁니다.
‘갑자기 몸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평소에는 혼자 병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식사도 했습니다.
걸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은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바로 옆으로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연락처와 진료 일정을 확인하기 쉽게 해두었습니다.
한국에서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과도 연락을 이어갔습니다.
형과 형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혼자 치료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제가 모든 일을 혼자 잘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머물 수 있는 형의 집이 있었습니다.
병원이 가까웠습니다.
필요할 때 연락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매일 제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는 제 상태를 확인하는 의료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 치료했다’는 표현을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혼자 병원에 갔지만 모든 치료를 혼자 결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혼자 검사실에 들어갔지만 결과를 혼자 해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혼자 걷는 날이 많았지만 아무도 제 곁에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러 사람과 연결된 상태에서 제 몫의 생활을 혼자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차이가 중요했습니다.
혼자 치료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강함만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가 경험한 것은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어떤 것은 내가 챙기고, 어떤 것은 의료진에게 묻고, 어떤 것은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어떤 것은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
그렇게 역할을 나누면서 치료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준비물이 아니라 가족이 없는 저녁이었습니다
기존의 제 생활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병원 일정을 기록했습니다.
검사자료를 정리했습니다.
질문을 적었습니다.
약을 챙겼습니다.
체류자격과 건강보험 문제도 알아봤습니다.
식사하는 방법도 바꿨습니다.
연락할 사람도 생각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준비들이 아닙니다.
가족이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낮에는 할 일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를 받았습니다.
밖을 걸었습니다.
장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끝나고 조용해지면 미국에 있는 가족 생각이 났습니다.
특히 폐암 4기라는 말을 처음 들은 뒤에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생존율과 생존기간을 검색하기도 했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습니다.
가족이 옆에 있었다면 그냥 한마디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한국에서는 혼자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가족과 영상통화를 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봤습니다.
미국 집에서 있었던 평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시간이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치료기간 내내 마음 한쪽에 있었습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가족에게 예전처럼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도 부담이었습니다.
저축이 치료비로 많이 사용됐고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그런 생각만 하면서 살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밥을 먹었습니다.
병원 일정이 있으면 병원에 갔습니다.
몸 상태가 괜찮으면 걸었습니다.
가족에게 전화했습니다.
약을 챙겼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혼자 폐암 치료를 받기 위해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가 만든 것은 거창한 준비목록이 아니었습니다.
치료가 있는 상태에서도 하루를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이었습니다.
가족은 미국에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었습니다.
그 거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에는 형과 형수가 있었고,
병원에는 의료진이 있었고,
미국에는 매일 제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과 연결된 상태에서 저는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하나씩 했습니다.
폐암 4기 치료를 위해 한국에 남았던 제가 가장 늦게 알게 된 것은 이것입니다.
혼자 치료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도움을 받을 곳을 알고,
모르는 것은 묻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고,
가족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것.
그렇게 저는 한국에서의 치료생활을 조금씩 만들어갔습니다.
작성자 정보
이 글은 폐암 진단 후 실제 치료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진단과 검사, 치료 과정에서 직접 겪고 느낀 내용을 기록하며,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의료정보 안내
이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료진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암의 상태와 검사 방법, 치료 과정, 약물 복용 및 생활관리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개인의 진료와 치료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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