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미국에 있었지만 저는 한국에 남았습니다, 폐암 4기 치료를 여기서 시작한 이유

저는 미국에서 약 30년을 살았습니다.
아내도 미국에 있었습니다.
자녀들도 미국에 있었습니다.
생활 기반도 미국에 있었습니다.
미국 건강보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병이 생긴다면 당연히 미국에서 치료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은 뒤 제가 치료를 시작한 곳은 한국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온 목적 자체가 암 치료가 아니었습니다.
2025년 3월 한국에 올 일이 있었고, 온 김에 건강검진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그 건강검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폐 이상이 발견됐습니다.
처음에는 폐에 물이 찬 것처럼 보인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암이라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한 뒤 큰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일정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병원을 알아봤습니다.
입원했습니다.
흉수를 검사했습니다.
CT를 찍었습니다.
흉수에서 암세포가 확인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PET-CT를 받았습니다.
조직검사를 위한 수술도 받았습니다.
비소세포폐암 선암이라는 병리 결과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폐암 4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 여기까지 오는 데 제 기억으로는 2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아주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한국에서 이미 시작된 진료를 계속 받아야 하나.”
이 글은 한국과 미국 중 어느 나라의 의료가 더 좋은지를 비교하는 글이 아닙니다.
저는 두 나라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같은 폐암 치료를 받아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비교를 할 수도 없습니다.
이 글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한 사람이 한국에서 갑자기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은 뒤 왜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기로 결정했는지에 대한 제 경험입니다.
1. 처음에는 당연히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폐암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제 한국 체류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제 집은 미국에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미국에 있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도 대부분 미국에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도 미국이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폐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을 때 당연히 미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생각했습니다.
미국 건강보험도 있었기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검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H내과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 형이 Y병원의 진료 예약을 알아봐 주었습니다.
예약은 약 열흘 뒤였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을 알아봤고 D병원 호흡기내과 진료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처음 접수창구에서 확인한 일정도 약 일주일 뒤였습니다.
저는 직접 호흡기내과로 가서 간호사 선생님에게 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마침 다음 날 진료 가능한 시간이 생겼고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진료가 입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입원한 뒤 흉관을 넣었고 첫날 약 1,200mL의 흉수가 빠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흉수 검사에서 암세포가 확인됐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약 5일 정도 입원한 뒤에는 원래 예약해 두었던 Y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이어갔습니다.
그곳에서도 검사와 진료가 바로 이어졌습니다.
PET-CT를 받았습니다.
조직검사를 위한 수술을 받았습니다.
병리 결과도 확인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새로운 결과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비행기를 타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진단과정을 중간에서 멈추고 다른 곳에서 다시 진료를 연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제 고민의 시작이었습니다.
2. 한국에 온 뒤 2주도 되지 않아 많은 것이 확인됐다는 점이 제 결정에 크게 작용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치료받기로 결정한 이유를 하나만 고른다면 저는 당시 진료가 이미 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됐습니다.
다음 날 다시 연락을 받았습니다.
큰 병원 진료를 알아봤습니다.
입원했습니다.
흉수를 검사했습니다.
암세포가 확인됐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병원을 옮겼습니다.
PET-CT를 받았습니다.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비소세포폐암 선암이라는 병리 결과와 4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폐 이상이 발견된 뒤 진단과정이 여기까지 진행되는 데 제 기억으로 2주가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굉장히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문제를 생각할 때 제 미국 생활 경험도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병원을 이용하면서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던 경험이 있었고, 검사기관이 따로 있어 검사와 결과 확인까지 시간이 걸렸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미국으로 돌아가면 전문의 진료를 새로 연결하고 검사를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겠다고 걱정했습니다.
당시 제 머릿속에서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분명하게 구분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미국 폐암 환자의 평균 진료 대기시간을 조사해서 내린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모든 병원이나 모든 환자가 그렇게 기다린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제가 약 30년 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의료기관을 이용했던 경험과 당시 제 상황을 바탕으로 했던 개인적인 걱정이었습니다.
반대로 한국에서도 의료기관과 전문의, 환자의 상태에 따라 기다리는 시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에게 중요했던 사실은 비교통계가 아니었습니다.
제 앞에서 이미 진료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은 상태였습니다.
다음 검사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조직 결과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담당 의료진이 있었습니다.
그 흐름을 중단하고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결국 저는 진행되고 있던 진료를 이어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3. 가족이 미국에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 남는 결정을 가장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시간만 생각했다면 결정이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미국에 있었습니다.
딸과 아들도 미국에 있었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은 날 저는 가족에게 전화로 소식을 알렸습니다.
아내에게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딸은 출장 중이어서 아내가 딸이 집에 돌아온 뒤 소식을 전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아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뒤 가족이 한국으로 왔습니다.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은 가족 입장에서는 저를 미국에 혼자 두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 역시 가족 가까이에서 치료받으면 마음은 훨씬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남으면 형의 집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제 아내와 아이들은 미국에 있어야 했습니다.
아들은 학교를 쉬고 일을 해서라도 돕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하지 않도록 설득했습니다.
딸도 생활비를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남아 치료받는다는 결정은 저 혼자만의 생활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족 전체의 생활에도 영향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료가 빨리 진행되니까 한국에서 치료받으면 되겠다”**라고 단순하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남으면 이미 시작된 진료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둘 다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결국 저는 한국에 남았습니다.
형의 집에서 지내면서 병원을 다녔습니다.
병원은 버스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였고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혼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과는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했습니다.
가끔은 매일 통화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가족에게는 제가 화면에 보이는 것 자체가 안심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을 이해했습니다.
한국에서 치료를 선택하면서 제가 포기해야 했던 가장 큰 것은 의료적인 것이 아니라 가족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점은 지금도 제 결정에서 가장 무거웠던 부분으로 기억합니다.
4. 치료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처음부터 한국 건강보험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현실적인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치료비였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 시민권자로 한국을 짧게 방문하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한국 건강보험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초기 검사와 입원, 수술, 약값 등을 직접 부담해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 D병원에서 입원과 검사, 시술 등에 약 600만 원 정도를 지불했습니다.
이후 Y병원에서 입원과 수술, 여러 검사에 약 2,000만 원 정도를 부담했습니다.
추가 유전자 검사인 Guardant360에도 상당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된 뒤 타그리소 80mg을 시작했을 때는 건강보험 적용 전이어서 30일분 약값을 약 750만 원 정도 부담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금액들은 2025년 당시 제가 실제로 기억하는 개인적인 비용입니다.
현재 가격이나 다른 환자가 부담하는 금액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병원, 검사, 보험 적용 여부와 환자의 상황 등에 따라 실제 비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타그리소를 두 달 정도 비급여 상태에서 구입했습니다.
그때 담당 의사 선생님도 제가 계속 모든 비용을 직접 부담하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한국에서 장기간 치료하려면 건강보험 문제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체류자격과 건강보험 문제를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F-4 체류자격을 준비했고, 이후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직장 건강보험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산정특례 적용 과정도 경험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는 정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F-4 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자동으로 즉시 건강보험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F-4 체류자격을 받은 뒤 일을 시작했고 직장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재외국민·외국인 건강보험 적용기준을 확인해도 F-4 등 체류자격과 건강보험 가입은 가입 유형과 체류·근로 상황 등에 따라 조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2025년에 경험했던 절차를 현재 다른 재외동포에게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건강보험과 산정특례가 적용된 뒤에는 제가 부담하는 치료비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별도의 글에서 자세하게 다룬 내용입니다.
이번 글에서 중요한 것은 제가 처음부터 한국 치료가 저렴해서 한국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결정 당시에는 오히려 건강보험이 없어 큰 비용을 직접 부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저는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던 진료를 이어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5. 결국 제 결정의 중심에는 ‘어느 나라가 더 좋은가’가 아니라 ‘지금 어디에서 치료를 이어갈 것인가’가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폐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 의료가 미국보다 좋은 건가요?”
저는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저는 미국과 한국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조건으로 폐암 치료를 받아 비교해본 사람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폐암 치료를 시작했다면 제가 어떤 병원을 만나고 얼마나 기다렸을지도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미국으로 돌아갔으면 더 늦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모든 암환자가 저처럼 빠르게 진단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사례입니다.
제 상황에서는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 예상하지 못하게 폐 이상이 발견됐습니다.
진료가 연결됐습니다.
입원했습니다.
검사가 진행됐습니다.
폐암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병원을 옮긴 뒤에도 PET-CT와 조직검사 등이 이어졌습니다.
비소세포폐암 선암이라는 병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때 미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과정을 중단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한국에 남아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뒤 유전자검사가 이어졌습니다.
추가 검사에서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고 의료진과 상담해 표적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국가암정보센터도 비소세포폐암의 치료는 병기뿐 아니라 환자의 전신상태와 치료 적응도 등에 따라 달라지며, 개별 상황에 맞는 치료가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저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진단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다음 단계가 연결되어 있는지, 제가 그 치료를 현실적으로 계속 받을 수 있는지였습니다.
그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당시의 저는 한국에 남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한국이 더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뒤 저는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
한국에 남을 것인지.
미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 있을지.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지.
건강보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그리고 어떤 치료를 받게 될지.
그중 상당수는 당시 제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앞에 놓인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다음 선택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치료하기로 한 결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약 30년을 살았습니다.
가족도 미국에 있었습니다.
미국 건강보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처음부터 한국 치료를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진단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건강검진에서 이상을 발견한 뒤 제 기억으로 2주도 되지 않는 기간에 입원과 흉수 검사, PET-CT, 조직검사까지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담당 의료진이 있었습니다.
다음 검사 일정이 있었습니다.
제 상태를 설명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가장 어려운 고민이었습니다.
그래도 결국 저는 이미 시작된 치료의 흐름을 끊지 않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됐습니다.
한국 건강보험이 없어 초기에는 큰 의료비도 직접 부담했습니다.
F-4 체류자격을 준비해야 했고 건강보험 문제도 해결해야 했습니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돌아보면 제가 한국에 남기로 한 이유를 **“한국 의료가 미국 의료보다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제 경험과 맞지 않습니다.
당시 제 진단과 치료가 이미 한국에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그 사실이 가장 컸습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오래 생활하다 한국에서 갑자기 큰 병을 발견한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제가 했던 선택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보험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현재 진단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어떤 의료진과 연결되어 있는지,
치료를 장기간 이어갈 생활 기반이 있는지,
경제적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지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제 선택을 기록하는 것뿐입니다.
미국에서 약 30년을 살았던 제가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다가 폐암을 발견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갈지 고민했습니다.
가족은 미국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국에 남았습니다.
어느 나라가 더 좋은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제 치료를 어디에서 계속 이어갈지를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폐암 4기 치료를 한국에서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택이었습니다.
작성자 정보
이 글은 폐암 진단 후 실제 치료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진단과 검사, 치료 과정에서 직접 겪고 느낀 내용을 기록하며,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의료정보 안내
이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료진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암의 상태와 검사 방법, 치료 과정, 약물 복용 및 생활관리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개인의 진료와 치료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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