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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4기 환자로 치료받으며 직접 겪은 진단과 치료 과정, 그리고 다시 일상을 찾아가는 경험을 기록합니다.

폐암 4기 진단 후 1년, 살아남은 시간을 세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보게 됐습니다

읽는 시간 약 18분 조회 2
ChatGPT Image Sep 21 2026 03 08 31 PM

폐암 4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1년 뒤의 제 모습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게 될지조차 알 수 없었고, 치료가 시작되면 제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막막했습니다. 무엇보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면 인터넷을 열어 폐암 4기 생존율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환자들의 이야기도 읽었고, 어떤 치료를 얼마나 오래 받았는지도 찾아봤습니다. 오랫동안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만나면 잠시 안심했지만, 좋지 않은 경험을 읽은 날에는 제 미래도 그렇게 될 것처럼 불안해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든 미리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두려움도 조금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폐암 환자로 살아온 시간이 1년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막상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제가 보낸 1년은 인터넷에서 찾아봤던 생존율이나 통계 숫자로만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타그리소를 복용했으며, 병원에 가는 날에는 검사를 받고 진료를 봤습니다. 몸 상태가 괜찮은 날에는 걷기도 했고, 미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하거나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검사 결과가 걱정돼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날도 있었지만,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간 평범한 날도 많았습니다.

폐암 진단 전이었다면 기억에도 남지 않았을 그런 하루들이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1. 처음에는 1년 뒤보다 다음 검사 결과가 더 두려웠습니다

제 폐암 진단은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2024년 11월 미국에서 코로나에 걸린 뒤 약 열흘 동안 몸살과 심한 기침을 겪었고, 증상이 어느 정도 지나간 12월부터는 크게 숨을 들이쉴 때 왼쪽 갈비뼈 아래쪽에서 약한 불편감이 느껴졌습니다.

2025년 1월 미국에서 내과를 찾아갔지만 그곳에는 별도의 검사시설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심한 기침 때문에 갈비뼈에 작은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을 생각했고, 약을 처방받은 뒤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이후 한국에 들어와 2월에 내과에서 X-ray를 찍었을 때는 처음에 폐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곧 폐암 4기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학병원으로 진료가 이어지면서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CT를 시작으로 MRI와 PET-CT 등 여러 검사를 받게 됐고, 검사가 하나씩 추가될수록 단순한 폐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1년 뒤의 삶을 생각하기보다 당장 다음 검사에서 무엇이 나올지가 더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진단을 받은 뒤에는 생각이 반대로 너무 멀리 가기 시작했습니다. 폐암 4기 생존율을 검색하고 다른 환자들이 얼마나 오래 치료를 이어갔는지 찾아보면서, 인터넷에 나온 숫자 안에서 제 미래를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숫자가 제 개인적인 상황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앞으로 남은 시간을 먼저 계산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2. ‘폐암 4기’라는 말 뒤에 제 치료에 필요한 정보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진단 직후에는 다른 설명이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폐암 4기’라는 말이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검사가 계속되면서 제 암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하나씩 추가됐습니다.

흉강경을 이용한 흉막 조직검사를 받은 뒤 선암이라는 결과를 확인했고, 이후에는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분자검사가 이어졌습니다. 혈액을 이용한 Guardant360 검사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습니다.

이후 의료진과 치료 방향을 논의한 뒤 타그리소 80mg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약을 받았을 때는 매일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암 치료약이라는 생각 때문에 복용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제가 이런 약을 매일 먹게 됐다는 사실도 한동안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치료가 길어지면서 타그리소를 복용하는 일도 조금씩 제 생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에는 약을 복용했는지 순간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한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암 치료약인데 이것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기억이 섞일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고, 그 뒤부터는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복용 후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달라진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작은 변화들이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치료가 제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특별한 사건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를 계속하면서도 제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만들어가게 됐습니다.

3. 검사 결과 하나가 하루 전체를 흔들던 때도 있었습니다

타그리소 치료를 시작한 뒤에도 병원에서 받는 검사는 계속됐습니다. 진료 일정에 맞춰 혈액검사를 반복했고, 필요한 시기에는 CT 같은 영상검사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면 CEA부터 찾았습니다. 진단 과정에서 처음 확인했던 CEA 384 ng/mL라는 숫자가 워낙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CEA를 확인하고 나면 결과표에 표시된 H와 L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백혈구와 혈소판, 헤모글로빈을 비롯한 여러 항목을 살펴보다가 정상범위를 벗어난 표시가 하나라도 보이면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CT 결과도 비슷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의학용어가 보이면 그 단어부터 인터넷에서 찾아봤고, 짧은 문장 하나를 가지고 좋은 결과인지 나쁜 결과인지 혼자 판단하려고 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검사를 여러 번 경험하면서 결과를 바라보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검사표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는 것과 그 숫자가 제 현재 상태에서 어떤 의미인지 해석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CEA 하나만으로 전체 치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혈액검사의 H나 L 표시 하나가 제 상태를 모두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결과 하나만 보고 바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이전 검사와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는지, 다른 검사에서는 무엇이 확인됐는지, 그리고 의료진은 전체 결과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함께 보려고 합니다.

검사를 여러 번 받았다고 해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편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가장 좋지 않은 상황부터 만들어놓는 일은 예전보다 줄었습니다.

4. 혼자 병원에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가족은 미국에 있고 저는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 혼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단 초기에는 혼자 진료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의료진의 설명을 놓치지 않아야 했고 검사 결과도 기억해야 했으며, 진료가 끝난 뒤에는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그날 들은 내용을 다시 설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하려고 하면 ‘의사가 정확히 어떻게 설명했더라’ 하고 기억이 흐려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료 전에 궁금한 내용을 휴대전화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이 많더라도 그중 꼭 확인하고 싶은 내용을 몇 가지로 정리했고, 필요한 경우에는 의료진에게 먼저 허락을 받은 뒤 설명을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병원에 가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혼자 병원에 가고, 의사를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폐암 치료를 계속하면서는 내 발로 병원까지 갈 수 있고, 진료실에서 궁금한 내용을 직접 질문하며, 설명을 들은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제 생활에서 꽤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건강할 때는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치료를 시작한 뒤에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5. 걷기는 운동량을 채우는 것보다 일상을 확인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걷기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폐암 진단 전에는 걷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걷고 싶으면 걷고, 바쁘거나 피곤하면 하루쯤 건너뛰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치료를 시작한 뒤에는 몸 상태가 허락하는 날이면 식사 후에 걸으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암환자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게 걷기의 의미는 운동량을 채우는 것과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특히 척추와 골반, 대퇴골 등에 뼈 전이 병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방사선종양학과 진료를 받고 일부 병변에 대한 방사선치료까지 경험하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전처럼 당연하게만 생각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제 발로 밖에 나갈 수 있고, 병원에 갈 수 있으며, 필요한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걷기는 운동 기록이라기보다 지금 제가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느끼는 시간이 됐습니다.

물론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까지 무리해서 걷지는 않습니다. 걷는다고 폐암이 치료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환자에게 저와 같은 방식으로 걸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걷기는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로 기억에 남습니다.

6. 아직 일어나지 않은 타그리소 내성을 미리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타그리소 치료를 이어가면서 처음에는 몰랐던 새로운 의학용어를 계속 접하게 됐고, 그중 가장 신경 쓰였던 것 가운데 하나가 ‘내성’이었습니다.

처음 타그리소 내성이라는 말을 알게 됐을 때는 현재 치료보다 그다음 치료가 먼저 걱정됐습니다. 다른 환자들이 타그리소를 얼마나 오래 복용했는지 찾아봤고, 내성이 생기면 어떤 치료를 받게 되는지도 검색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임상시험에 관한 정보까지 찾아보게 됐습니다.

문제는 정보를 알아보는 것 자체가 아니라, 검색을 계속하다 보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이미 제게 일어난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현재 타그리소 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머릿속에서는 이미 그다음 치료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지금 치료를 받고 있는데 왜 벌써 다음 치료 속에서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치료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타그리소 내성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고, 앞으로 상황에 따라 고려될 수 있는 치료나 임상시험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 1년 동안 한 가지 차이를 알게 됐습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알아두는 것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미래를 오늘의 현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라는 점입니다.

7. 미국에 있는 가족과 나누는 평범한 대화도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가족이 미국에 있고 저는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검사나 진료가 있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결과를 가족에게 알려주게 됩니다.

좋은 이야기든 걱정되는 이야기든 결국 가족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진료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려고 노력하게 됐고, 이것이 질문을 메모하고 의료진의 설명을 다시 확인하는 습관으로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통화할 때 항상 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먹었는지,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처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런 대화가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잠시라도 검사 결과나 치료 이야기를 내려놓고 그냥 가족의 한 사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폐암 진단 전에는 이런 통화를 특별하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내일도 전화할 수 있고 다음 주에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가족과의 통화를 특별한 마지막 순간처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평범한 대화가 지금은 조금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8. 어느 순간부터 ‘암환자의 하루’가 아니라 다시 ‘제 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진단 직후에는 하루의 거의 모든 생각이 폐암과 연결돼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면 폐암 환자에게 좋은 음식인지 궁금했고, 조금 피곤하면 암 때문인지 걱정했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에는 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고, 이전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작은 변화까지 신경 쓰게 됐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는 날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환자로 살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암을 생각하지 않는 순간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 글을 쓰다가 몇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밖에 나가 걷고 돌아온 뒤 다른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족과 통화하면서 암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나눴고, 인터넷에서도 암이 아닌 다른 내용을 찾아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몇 시간 동안 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있었습니다.

제가 폐암 4기 환자라는 사실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약을 복용하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며, 검사 결과가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암이 제 생활 안에 있다는 것과 제 생활 전체가 암으로만 채워져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저는 그 차이를 조금씩 느끼게 됐습니다.

9. 1년 전과 지금은 제가 중요하게 보는 숫자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진단 직후 가장 많이 찾아봤던 숫자는 생존율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CEA가 신경 쓰였고, 타그리소를 복용하기 시작한 뒤에는 다른 환자들이 이 약을 얼마나 오래 복용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숫자를 이용하면 불확실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숫자를 확인합니다.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CEA도 확인하며, 검사 날짜와 진료 일정도 챙깁니다.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숫자만으로 제 하루를 판단하지 않게 됐습니다.

오늘 식사를 잘했는지, 몸 상태가 괜찮아 조금 걸을 수 있었는지, 혼자 병원에 다녀왔는지, 진료실에서 궁금했던 내용을 제대로 물어봤는지, 가족과 통화했는지 같은 평범한 일들도 제게는 중요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굳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폐암 환자로 지난 1년을 살아보니 결국 그런 평범한 일들이 모여 제 하루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폐암 4기 진단 후 1년, 저는 아직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1년 전에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알지 못합니다.

타그리소 치료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언젠가 치료가 바뀌게 될지, 다음 검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미리 알 수 없습니다.

폐암 4기라는 사실 역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1년을 지나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방법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알 수 없는 미래의 답을 찾느라 오늘을 자주 놓쳤습니다. 생존율을 검색하고 다른 환자의 치료기간을 확인하면서 제게 남은 시간을 계산하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와 제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조금 구분해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약을 챙깁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 날에는 검사를 받고 진료를 보며, 몸 상태가 괜찮으면 걷기도 합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하고, 시간이 나면 블로그에 제 경험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아무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그냥 평범하게 하루를 보냅니다.

폐암 진단 전에는 그런 하루를 기억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제가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힘든 날에는 힘들고,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는 여전히 걱정됩니다. 앞으로의 치료를 생각하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까지 모두 제가 살아가는 하루라고 생각합니다.

폐암 4기 진단 후 지난 1년 동안 제가 알게 된 것은 무조건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제가 미리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 전에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같은 질문을 합니다.

다만 이제는 그 질문 뒤에 하나를 더 붙이게 됐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아직 모르지만,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난 1년 동안 제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어쩌면 이 질문을 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성자 정보

이 글은 폐암 진단 후 실제 치료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진단과 검사, 치료 과정에서 직접 겪고 느낀 내용을 기록하며,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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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료진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암의 상태와 검사 방법, 치료 과정, 약물 복용 및 생활관리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개인의 진료와 치료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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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4기 진단 후 현재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환자로, 제가 실제로 경험한 진단·검사·치료 과정과 그 과정에서 확인한 정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료인이 아니며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내용은 담당 의료진과 공식 의료기관의 정보를 우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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