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4기 치료를 한국에서 혼자 받았습니다, 미국의 가족과 매일 영상통화를 한 이유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은 날, 제가 해야 했던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당시 딸은 출장 중이어서 아내가 딸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식을 전했습니다. 대학에 다니던 아들에게도 결국 암 소식이 전달됐습니다.
전화 몇 통으로 가족의 일상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었고 가족은 미국에 있었습니다.
암이라는 사실도 걱정이었겠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제 상태를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이 더 답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약 2주 뒤 가족들이 모두 한국으로 왔습니다.
오랫동안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약 3일 정도 함께한 뒤 가족들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남아 치료를 계속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에게 새롭게 생긴 생활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거의 매일 하는 영상통화였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통화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들에게 영상통화는 단순한 안부 전화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오늘도 괜찮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폐암 소식을 들은 가족은 약 2주 만에 모두 한국으로 왔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저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해왔지만 한국에서 검사를 받다가 폐암이 발견됐고, 진단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결국 한국에서 치료를 계속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족에게 암 소식을 알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숨길 수도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먼저 이야기했고 가족 모두가 제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가장 기억하는 것은 가족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뒤 약 2주 만에 아내와 자녀들이 한국으로 왔습니다.
가족들이 한국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생활이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약 3일 정도 함께한 뒤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특별한 일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 제 앞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습니다.
전화로 목소리만 듣던 가족이 제 얼굴을 보고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컸습니다.
딸은 제 생활비를 돕겠다고 했고, 대학에 다니던 아들은 학교를 쉬고 일을 하겠다는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아내가 아들에게 학교를 계속 다니도록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암 치료비도 걱정이었지만 제가 아프다는 이유로 가족의 생활까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암을 진단받기 전에는 가족을 제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변화가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국가암정보센터에서도 암 진단 후 환자가 두려움과 혼란을 경험할 수 있으며 가족과 친지 등 주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심리적 적응 과정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치료를 계속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가족의 걱정을 없애줄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저는 다시 한국에서 치료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형님 집에서 지냈고 병원에도 대부분 혼자 다녔습니다.
특별한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 아니라면 혼자 병원에 가는 것이 크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는 상황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제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했습니다.
화면을 켜고 얼굴을 보여줬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병원에는 다녀왔는지 같은 평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매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매일 얼굴을 보여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제 몸 상태를 직접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걷기도 했고 밥도 먹었고 병원도 다녔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만 달라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입장에서 생각하니 매일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이해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능하면 즐겁게 통화하려고 했습니다.
아픈 표정으로 암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날 먹은 음식 이야기도 하고 별일 없는 하루 이야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였지만 가족에게는 그런 평범한 모습이 오히려 안심이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암 환자와 가족 사이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은 공식적인 암생존자 지원 체계에서도 다뤄지고 있습니다. 국립암센터 암생존자통합지지 프로그램에는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사회적 어려움을 지원하는 내용과 함께 의사소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암 환자가 가족과 매일 연락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가족과 연락하는 방식도 각 가정마다 다를 것입니다.
매일 영상통화를 하는 것은 우리 가족이 선택한 방법이었습니다.
가족의 걱정을 없애려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저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이 그랬습니다.
한국에서 치료를 시작하면서 비급여 검사와 치료비가 많이 들었고 저축도 상당히 사용했습니다.
제가 예전처럼 가족을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못한다는 사실도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른 것을 원했습니다.
물론 치료비도 걱정했겠지만 그보다 제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매일 영상통화를 하면서 그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끔은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화면 속에서 서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도 있었습니다.
치료가 계속되면서 제 몸 상태도 처음보다 좋아졌습니다.
걷는 거리도 늘었고 식사도 비교적 잘했습니다. 병원 진료 간격이 매달에서 3개월 정도로 길어졌을 때는 저도 기뻤고 가족에게 그 소식을 전하는 마음도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전화할 때마다 암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평범한 이야기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암 환자가 된 뒤에도 아버지이고 남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립암센터의 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도 암을 경험한 사람의 문제를 신체적인 부분만으로 보지 않습니다. 심리적 어려움과 사회생활, 가족과의 관계와 의사소통 등 여러 영역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치료는 환자가 받지만 암이라는 사건은 가족의 생활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렸고 가족은 미국에서 제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치료비를 걱정했고 가족은 제가 돈 걱정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까 걱정했을 것입니다.
같은 일을 서로 다른 장소에서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족이 걱정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괜찮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좋은 결과가 있으면 함께 기뻐합니다.
그렇게 서로의 일상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지금 우리 가족이 암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됐습니다.
매일 얼굴을 보여주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안심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한국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족은 미국에 있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는 여전히 멉니다.
그래도 휴대전화 화면을 켜면 금방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날은 매일 영상통화를 하는 것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제가 가족이라면 저 역시 그랬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은 가족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반대로 제가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오늘도 밥을 먹었다는 것.
오늘도 걸었다는 것.
오늘도 약을 먹고 있다는 것.
오늘도 평범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작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가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안심이었습니다.
저는 가족에게 항상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도움을 받는 것을 무조건 미안해하기보다 그 마음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암 치료를 하면서 제가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환자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가족에게 항상 강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환자도 힘들 수 있고 가족도 힘들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방식도 다를 것입니다.
저에게는 매일의 영상통화가 그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언젠가는 치료 때문에 한국에 머무는 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 함께 여행도 하고 싶습니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제가 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치료를 받고, 밥을 먹고, 걷고, 약을 챙겨 먹습니다.
그리고 전화가 오면 화면을 켭니다.
“나 오늘도 괜찮아.”
말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가족이 조금 안심할 수 있다면, 지금의 저에게는 그것도 치료 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입니다.
작성자 정보
이 글은 폐암 진단 후 실제 치료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진단과 검사, 치료 과정에서 직접 겪고 느낀 내용을 기록하며,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의료정보 안내
이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료진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암의 상태와 검사 방법, 치료 과정, 약물 복용 및 생활관리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개인의 진료와 치료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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