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4기 진단을 미국 친구들에게 바로 알리지 못했던 이유, 치료가 시작되고 말할 수 있게 된 과정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한국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은 제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생활하며 알고 지낸 친구와 후배들에게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 한 명만은 뜻밖의 방식으로 가장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숨기라고 한 것도, 암에 걸린 것이 부끄러웠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저 자신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전에 제가 먼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제가 친구들에게 알리지 못했던 이유, 알릴 수 있게 된 계기, 그리고 알린 뒤에 있었던 일을 적은 개인 기록입니다. 암을 주변에 언제 알려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말하는 글이 아니며, 저는 의료인이나 상담 전문가가 아닙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나 폐암 4기래” 다음에 할 이야기가 없었던 때
- 친구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된 계기
- 알린 뒤 받은 응원과 도움, 그리고 달라진 대화
- 누구에게 언제 알릴지를 제가 정해도 된다는 생각
꼭 읽어 주세요. 이 글은 환자 한 사람의 경험이며 의학적·심리적 조언이 아닙니다. 주변에 알리는 시기와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 때는 혼자 견디지 말고 의료진이나 마음의 전문가와 상담해 주세요.
처음에는 “나 폐암 4기래”라는 말 다음에 할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진단 직후 미국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제 상황을 저 자신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친구에게 “나 폐암 4기래”라고 하면 몸은 괜찮은지, 어떤 치료를 받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물을 텐데 저는 그 질문들에 답할 수 없었습니다. 조직검사로 선암을 확인한 뒤에도 치료와 관련된 분자적 특징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졌고, 처음 한 검사에서는 표적치료로 연결할 변이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후 추가 혈액 기반 유전자검사를 받고 약 2주를 기다린 끝에 EGFR Exon 19 변이가 확인됐고, 의료진과 논의해 타그리소 80mg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검사 과정은 다른 글에 적었습니다).
그제야 “지금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가”에는 대답할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암을 숨기려 했다기보다 제 상황을 먼저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단과 검사, 치료 결정이 너무 빠르게 이어져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치료가 시작된 뒤에도 한동안 알리지 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치료를 시작하고 처음 약 5개월 동안은 매달 병원에서 혈액검사와 X-ray를 받았고, 제가 보기에도 폐에 있던 흉수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은 처음보다 안정됐지만 바로 친구들에게 연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병을 알리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까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전까지 미국 친구들에게 저는 함께 일하고 농담하고 식사하던 오랜 친구였는데, “폐암 4기”라고 말하는 순간 친구가 아니라 먼저 암 환자로 보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할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저 혼자 가지고 있던 생각에 가까웠습니다.
가족의 걱정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웠고 저도 매달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에게 같은 설명을 반복하고 그들의 걱정까지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검사를 받으며 제가 먼저 조금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약 5개월 뒤 PET-CT를 보고 처음으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타그리소를 복용한 지 약 5개월 무렵 PET-CT를 다시 받았습니다. 첫 검사에서 예상하지 못한 다른 부위와 뼈 병변 설명을 들은 경험이 있어서 좋은 결과만 기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화면을 보며 느끼기에 처음 눈에 띄던 부분들이 이전과 상당히 달라 보였고, 그 순간 기적 같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환자인 제 감정이었고, 암이 없어졌다거나 완치됐다는 의학적인 뜻은 아닙니다. 영상 결과의 판단은 담당 의료진의 몫이고 저는 지금도 치료와 정기검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이 검사의 의미는 PET-CT 후기에 적었습니다).
다만 그때 처음으로 “앞으로도 치료를 계속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그때부터 미국 친구들에게 제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말인데 처음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친구들에게 처음 알리기 시작했을 때, 진단 직후 상상했던 것만큼 말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병명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말을 하는 제 마음과 그 뒤에 이어서 설명할 내용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 진단 직후 | 치료가 자리 잡은 뒤 |
|---|---|
| “나 폐암 4기래.” 거기서 말이 끝났을 것 | “폐암 4기야. 그래도 지금 치료받고 있어.” |
| 질문에 답할 수 없음 | 선암, EGFR 변이, 표적치료제 복용, 매달 검사 중이라고 설명할 수 있음 |
| 암 환자로만 보일까 걱정 | 치료받으며 제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음 |
제가 친구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된 시점은 암을 완전히 받아들인 순간이라기보다, 암 다음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시점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알린 뒤 예상하지 못한 응원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알리고 나니 많은 친구와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몸은 어떤지, 치료는 어떻게 받는지 묻는 친구가 있었고, 종교적인 믿음 안에서 기도하겠다고 한 친구, 계속 문자로 안부를 물어 준 친구도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치료받으며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안 몇몇 친구는 제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도움을 보내 주었습니다. 금액도 감사했지만 저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그 마음이었습니다.
30년 가까운 미국 생활 동안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맺어 온 관계가 제가 가장 어려운 때 다시 저에게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지난 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고, “내가 헛살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친구가 많아야 좋은 삶이라는 뜻이 아니고, 도움을 받아야 관계가 좋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친구들의 응원이 제 암 치료 효과를 높였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심리적으로 큰 힘을 받았습니다. 도움을 받는 마음에 대해서는 가족에게 도움을 받던 이야기에도 적었습니다.
알리고 나니 오히려 숨기고 있다는 부담이 사라졌습니다
알리면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제가 계속 설명해야 해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처음에는 “괜찮냐”, “치료는 어떻게 하고 있냐”,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는 상황을 숨기거나 설명을 피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마음이 편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친구들도 제 병에 조금씩 익숙해졌는지, 처음에는 통화할 때마다 몸과 치료 이야기를 먼저 물었지만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몸 상태가 처음보다 좋아지고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주 친한 친구들은 “정말 환자 맞냐”, “꾀병 아니냐”는 식으로 농담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농담이 좋습니다. 제가 아프지 않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오랜 친구들이 저를 조심스럽게 암 환자로만 대하지 않고 예전처럼 농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진짜 가까운 친구들과의 관계는 쉽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언제 알릴지는 제가 정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친구들에게 한동안 알리지 않았던 선택을 저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당시 저는 병의 상태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가족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이야기했고, 치료 방향이 정해지고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인 뒤 친구들에게 알렸습니다. 그것이 당시의 저에게 맞는 순서였습니다. 저에게는 “말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이 필요했던 시간이 있었고, 이후에는 “말할 수 있는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누구에게 제 병을 이야기할지는 제가 선택합니다.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설명하고 싶지 않을 때는 말하지 않습니다.
국가암정보센터의 마음가짐 안내에는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기보다 올바르게 표현하려 노력하고, 가까운 사람 가운데 서로 존중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걱정거리를 비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글의 선택이 모든 분에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조용히 치료받기를 원하는 분도 있고, 관계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심리적 안정에 관한 안내에는 힘든 때에 주변이나 마음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알릴지 말지, 누구에게 얼마나 이야기할지가 고민이라면 가족이나 의료진, 마음의 전문가와 먼저 이야기해 보시길 권합니다.
마무리: 암을 숨긴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는 폐암을 숨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나 폐암 4기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 “그래도 지금 치료받고 있어”라는 다음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그 한 문장을 말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언젠가 한국에서의 치료 생활을 마치고 미국의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그동안 걱정해 주고 응원해 준 친구들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그때는 검사 결과나 약 이야기보다 평범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폐암이 제 삶에서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폐암이 있어도 제 삶에는 여전히 친구와 가족, 웃음과 평범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알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제 개인 경험이며 모든 환자에게 같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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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국가암정보센터, 암환자 생활백서 > 마음가짐 > 마음가짐과 생활태도: https://cancer.go.kr/lay1/S1T327C328/contents.do
- 국가암정보센터, 암환자 생활백서 > 마음가짐 > 심리적 안정을 위해: https://www.cancer.go.kr/lay1/S1T327C329/contents.do
작성자: 폐암 4기 진단 후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환자 본인입니다. 이 글은 의료진의 진단이나 치료 권고, 전문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작성자 정보
이 글은 폐암 진단 후 실제 치료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진단과 검사, 치료 과정에서 직접 겪고 느낀 내용을 기록하며,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의료정보 안내
이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료진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암의 상태와 검사 방법, 치료 과정, 약물 복용 및 생활관리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개인의 진료와 치료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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